본문 바로가기
컨텐츠 한바닥평

[서평]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2022)

by 커피 라이터 coffee writer 2023. 8. 16.

 


요즘 눈에 띄게 빈도가 잦아진, 동시에 나만 그런가 싶은 행동패턴이 생겼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유튜브를 제 속도로 보는 일이 힘들어진 것이다.

영상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만 빨리 확인하고 싶어서 1.5배속으로 보기 시작했더니
금새 2배속으로 넘어가는 것은 물론, 제 속도로 보는 일이 답답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마치 이 책은 이런 나에게 말하는 메시지일 것 같아서 책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 책은 크게 4가지 이유로 '빨기 감기에 익숙해지는 세태'에 대해 설명한다.
1. 컨텐츠 소비방식의 변화
2. 작품의 과잉 설명 경향
3. 가성비 중심의 사고관
4.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수단
 
1. 컨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 : 구독경제로 인한 컨텐츠의 과잉공급
20년 전만 해도 컨텐츠를 즐기려면 많은 비용과 수고가 필요했다.
영화를 보려면 영화관에 가야했고, 책을 보려면 원하는 책이 있는 서점까지 가야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처럼 구독경제가 활성화된 지금
컨텐츠를 소비하려면 한 달에 1만원 남짓의 구독료만 지불하면, 원하는 만큼 컨텐츠를 볼 수 있다.
 
한 편의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가치가 줄어든 만큼
그 컨텐츠를 온전히 즐겨야 한다는 의무감도 줄어들고, 컨텐츠에 대한 집중도 역시 떨어지게 된다.
 
🔎 적은 비용으로 많은 컨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꿈의 서비스는
작품을 감상할 기회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습관을 심어주는 데에 영향을 주었을지 모르겠다.
 
2. 작품의 과잉 설명 경향: 독자를 작품 끝까지 끌고가기 위한 전략 
작품의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은 마니아들에게 즐거움과 같은 일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찾기 위해 2회차, 3회차, N회차까지 컨텐츠를 다시 보는 이들도 많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컨텐츠를 접하기 쉬워진 환경만큼, 마니아보다 더 많은 수의 입문자들이 유입되었다.
이들을 작품 끝까지 감상하도록 하려면, 중간에 낙오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또 반대로 입문자들이 작게에게 다이렉트(댓글, DM 등)로 전달하는 피드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 습관이 쌓여 교양이 되고 이해력이 된다.
추상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할 지 모르는 것과 같다.
 
3. 가성비 중심의 사고관: 시간은 부족한데, 변화의 흐름은 따라가야 하는 시대
현대인은 20년, 아니 10년 전에 비해서도 더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직접 전화를 걸고 방문해서 일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이메일과 메시지를 손 안에서 알림 받으며 실시간으로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긴 시간을 내어 컨텐츠를 즐기는 행위는 큰 기대비용을 요구한다.
동시에 컨텐츠를 즐기지 않으면 사람들과 유려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다.
(올해 초 드라마 '더 글로리'만 보아도, 해당 컨텐츠를 알지 못하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밈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와, 옆 사람의 성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환경.
교육조차 입시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목적없는 행동은 비효율적이라는 사고를 심어줄 수 있다.
또 SNS는 마치 1%의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며, 조금만 늦쳐져도 실패라고 느끼게 할 수 있다.
 
4.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수단 :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사고로부터의 회피
가성비와 같은 결으로,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즐거움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이해하기 쉬운 컨텐츠를 찾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현상으로 '라이트 노벨'의 유행을 들며, 주인공이 단 한 번도 어려움을 겪지 않는 스토리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 원하는 컨텐츠만 소비하며, 다양성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그 언제보다 다양성을 외치는 사회이지만, 그것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접할 기회마저 차단하며 무시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5. 결론 : 매니아와 입문자 모두를 아우르는 '오픈 월드'
결국 외적, 내적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하며, 사회는 짧은 영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역행할 수 없다면, 작가는 게임의 '오픈 월드' 세계관처럼 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오픈 월드란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지 않아도, 게임을 진행하는 데에 문제가 없는 세계관이다.
이야기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더없이 깊이 파고들며, 배경부터 크고 작은 숨겨진 의미를 찾아갈 수 있지만
게임의 진행만을 원한다면 그저 플레이하며 결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매니아와 입문자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방향으로 컨텐츠는 변화해야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을 덮으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주는 아이러니'에 대한 슬픔이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생산성은 올라가고, 인간의 노동을 줄어들 것이며 그에 따라 인간은 점점 더 풍요롭고 여유로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매해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지금, 우리는 정말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을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시간 단위가 아니라 분 단위, 아니 초 단위로 쪼개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줄글로 이어지는 이메일은 커녕, 몇 단어로 이루어진 카카오톡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받고
읽자마자 사라지는 1 속에서 즉각 응답할 것을 은연 중에 강요받으며, 오늘도 허겁지겁 일을 '해치우기' 바쁘다.
 
풍요롭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전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컨텐츠를 즐길 수 있기에, 최대한 많은 인풋을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일지도 모르겠다.
유튜브만 틀어도 요리부터 프로그램 다루는 방법, 언어를 배우는 방법까지 수만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무언가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를 볼 때면 ‘당연하다’는 이해보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괘씸함을 떠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풍요 속에서 조용히 질식해가며, 현대인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법으로 ‘시간의 단축’을 택했을 수도 있겠다.
사람의 수명은 더 길어졌으니, 어쩌면 옛날보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 많은 셈인데...
왜 우리는 계속해서 시간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씁쓸함이 감도는 결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