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대하여, 어릴 적부터 반복적으로 교육받은 것이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그러나 직업을 가지는 순간, 아니 그 전부터 이 문장에 대해 '🤔정말로?'라는 반문을 수십 번쯤 해본 것 같다.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누군가는 '그런 취급을 받기 싫었으면 어릴 적에 더 공부하지 그랬어'라는 멸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멸시하는 직업이 정말로 가치가 없는, 천한 직업이기 때문인가?
가치가 없다면, 그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책에서 말하는 더티워크가 바로 앞서 말한 '가치없는', 정확히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이다.
정확하게 인용하자면, 더티워크는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더럽다고 여겨지는 일(여기서 '더럽다'는 도덕 또는 윤리의 위반)이다.
미국인인 화자가 짚어낸 더티워크는 교도관, 도축업 노동자, 드론 부대의 조종사와 석유 시추 노동자이다.
이 단어들만 보아도, 나는 더티워크의 뜻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내가 하기는 싫은 일.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내 앞에서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
결국 우리 사회를 위한 필수 노동자이지만, 도덕과 윤리라는 가치 하에 모두가 쉬쉬하는 일이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로, 아마 인류가 ‘만족’한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가 마음에 들었다면 더 많이 갖고 싶었을 것이고, 손에 쥐었다면 더 빨리 갖고 싶었을 것이다.
초기엔 왕과 귀족처럼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가능한 욕망이었겠지만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며 서로를 채찍질한 결과, 일반 사람들도 조금만 욕심을 낸다면 닿을 수 있는 욕망이 되었다.
얼핏 창문 바깥만 내다 보아도 벤츠, 아우디, BMW는 물론 페라리까지 심심치 않게 다니는 걸 볼 정도니까.
그러나 일반 사람들 수준까지 상류 사회에 대한 욕망이 확산될 정도라면,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물질은 물론, 이를 뒷받침해줄 노동력은 얼마나 더 많이 필요한 것일까?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돈을 두고도 다른 지불가치를 느낀다.
최근 이를 가장 잘 표현한 밈을 보았는데, 바로 '요즘 3만원의 가치란'이라는 밈이다.
같은 3만원을 지불하고도 술을 마시는 비용으로는 적게 나왔다고, 서비스 구독료는 기둥 뿌리를 뽑을 돈이라 느낀다.
사실 절대적으로 투자하는 시간을 보면, 술자리는 고작해야 3~4시간이었을 것이고 서비스는 매일 1시간쯤 사용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더티워커의 삶은 힘겹다.
사람들은 그 일이 분명히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고 느끼면서도, 그 일을 처리하는 데에 많은 돈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 내가 매일 다니는 길거리에 정신 질환자들이 없기를 바라면서, 세금을 들여 공립 정신병원을 운영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 내 생활이 안전하기를 바라면서, 군대에 입대해서 직접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민들을 대신해 군인들이 대신 희생하고 있다는 부채감을 느끼고 싶지도 않다.)
🚗 버스와 지하철에서 수많은 인파와 부대끼는 대신 자동차로 편하게 이동하고 싶지만, 기름값을 많이 내기엔 아깝다.
이 모든 욕망이 모여 필수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이들의 노동력을 폄하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은 일이라고.
그러나 진입장벽이 낮은 것과 우리가 기피하는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화자가 든 직업은 일반인을 뽑지도 않는, 진입장벽이 있기도 하다!)
교도관이라면 남들보다 강인한 신체와 포용력, 인내력을 가져야 하고
도축업 노동자라면 남들보다 강한 정신력과 섬세한 손재주를 가져야 하고
드론부대 조종사라면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과 드론에 대한 기술력을 갖춰야 하고
석유 시추 노동자라면 남들보다 두, 세 배는 강인한 신체를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그 직업들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동시에 필요하지만, 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숨겨진 어딘가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자, 폐부를 찌르는 듯한 직설적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불쾌한 행위는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으로 옮겨졌다. (…) 우리가 문명화라 부르는 모든 과정의 특징이 바로 이 격리의 움직임, 혐오스러운 것을 '무대 뒤편'에 숨기는 일임을 우리는 앞으로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정말 안타깝게도 인류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물질과 그에 뒤따르는 노동력이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그것을 고칠 수 없다면...
우리가 고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은 '태도'가 아닐까.
더티워크는 법과 정책의 산물이요, 예산 편성의 산물이요, 우리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른 결정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들의 고단함을 인정하고, 적어도 더 나은 물질적 환경과 더 높은 자존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적어도 그런 생각을 머릿 속에 가지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마음 속에 누군가에 대한 부채감, 나 하나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진실로 문명화된 사회라면, 문명화된 사람이라면 지성이 주는 불편함까지 감수해야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더티워크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인스피아의 글을 아래에 덧붙이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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