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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한바닥평

[서평] 급류, 정대건 (2022)

by 커피 라이터 coffee writer 2025. 7. 10.

 

급류, 정대건 (출처: 밀리의 서재)

 

소설 카테고리에서 오랜 기간 10위 이내, 베스트 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작품인지라

제목과 표지가 너무나 익숙했지만, 실제 책을 펴내려가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작품이다.

 

역설적이게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야기라는 뜻은

보편적인 (어쩌면 특색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베스트 셀러 리스트를 보면서도 외면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에 역설적이게도

끝끝내 책을 펼쳐보게 된 이유도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책이라면, 어떤 이야기인지 한번 읽어나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책을 읽지 않은 이유도, 그리고 읽게 된 이유도 베스트 셀러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것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긴 고민의 시간을 거쳐서 만난 급류는 내게 <소설 '구의 증명'의 청소년판> 같다는 인상을 남겼다.

남들이 보기엔 구질구질한 인연이, 서로에게는 세상에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로가 되어 삶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구의 증명'은 어떻게 삶의 마지막까지 이처럼 처절하고 외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어내려갔다면

'급류'는 그래도 고단한 삶 속에서 기댈 수 있는,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주기로 했구나.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한 맛(?)의 서사였다.

 

이 서사는 소녀 도담과 소년 해솔로, 한적한 시골로 그려지는 가상의 도시 진평에서 벌어지는 불운한 첫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치 소설 '소나기'의 한 장면처럼 풋풋하고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마냥 아름답게 흘러가지 않는다.

 

홀로 진평에 내려온 해솔의 엄마와, 유부남인 도담의 아빠가 외도로 의심되는 정황들이 드러나며

해솔과 도담의 사이는 일어나서는 안될, 이복 남매간의 사랑처럼 비춰지게 된다.

 

특히 몸도 아픈 데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어머니를 둔 도담은 해솔보다 이 관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해솔의 엄마와 도담의 아빠, 둘의 불륜 관계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에 집착한다.

 

완강한 도담의 뜻에 따라 둘의 관계를 추적해가던, 어느 달 밝은 밤.

남몰래 폭포에 몸을 담근 두 사람을 발견한 도담과 해솔은 강한 빛의 랜턴을 비추게 되고

이에 놀란 해솔의 엄마와 도담의 아빠는 중심을 잃고 폭포 저 깊은 곳에 빠져들며 사망한 채 계곡 하류에서 발견된다.

 

어른들의 상상에 불을 지필 법한 정황에 해솔과 도담의 사이는 자연스럽게, 아니 어른의 사정에 의해 부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서로 다른 진로를 선택하며 삶의 궤도가 갈라지게 된다.

 

그러나 공통의 트라우마는 해솔과 도담에게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선사하게 된다.

도담에게는 냉소적인 태도를, 해솔에게는 내향적인 태도를 갖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이는 자기파괴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성인이 된 이후 우연한 계기로 재회하게 되지만, 이미 수 년에 걸쳐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면모는

서로를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닌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들고, 싸우고 또 싸우기를 반복하다가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재회의 경험은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도담은 물리치료사로, 해솔은 도담의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된다.

 

그것조차 인연이 될 운명이었던지, 물불 안가리고 뛰어들던 해솔은 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부상당한 소방관의 치료를 돕는 물리치료사로 도담이 배치되며, 그들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삶의 과정에서 도담과 해솔 모두 연인을 만들기도 하지만

마치 두 사람이 이어지는 운명이 존재하기라도 한 것처럼, 결국 곁가지처럼 뻗어갔던 인연들을 정리하고

서로의 트라우마를 감싸안으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러한 줄거리에 대한 서평은 둘로 나뉘는 것처럼 보인다.

트라우마를 핑계로 다른 연인에게 상처를 남기면서까지 옛 연인에게 돌아가겠다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혹평,

그리고 서로의 트라우마이자 위안이 되는 두 사람이 다시 재회하게 되는 사랑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호평.

 

굳이 둘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나는 호평에 가깝다.

세상 만사, 제3자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입장에선 객관적인 태도란 있을 수 없다.

제3자가 알지 못하는, 내·외부의 무언가(트라우마가 되었든, 혹은 피해의식이든)가 객관성을 흐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본질적인 자각. 너와 나만이 이 세상의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주변 사람들의 힐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서로를 택한 용기에 적어도 박수를 더해주고 싶다.

(물론 이러한 선택으로 상처를 받게 된 사람들에겐 둘도 없는 바퀴벌레 한 쌍이 되겠지만)

 

이처럼 절절하든, 아니면 흔해빠진 서사든...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둘만 좋다면 세상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나에게만은 옳은 것이 되는 비합리적인 선택.

 

그것에 극적인, 정말로 극적인 서사를 불어넣음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몰입을 선사했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베스트셀러 소설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슴이 콱콱 막히는, 고구마같은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지만

둘만의 서사로 가득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 번쯤 권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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