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리고 영화 '콘클라베'는 주류라고 보기는 어려운, 잔잔한 서사의 이야기이지만
올해 4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종하신 순간과 영화의 개봉시기가 맞물리며 많은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타이밍이 좋아서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특히 나같은 무교에겐) 비밀스러운 '바티칸'이라는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세력간 정치관계.
즉 미지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특수성과 인간으로서의 고뇌라는 보편성이 맞물리는 데에서 오는 흥미로움이 공존했다.
콘클라베는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 회의를 의미하는 단어로, 교황님의 선종 이후 추기경단이 외부 환경과 차단된 채 새로운 교황님을 선출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외부 환경과 차단된 채'라는 조건은 객관성을 얻기 위한 조건이지만, 동시에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어떠한 외압도 없이 오직 추기경의 주체적인 판단에 맡긴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동시에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배경 자료들의 도움없이 무지의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유일하게 외부 상황을 어디까지 전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인물, 추기경 단장인 로렌스의 입장에서 서사를 풀어 내려간다.
이에 대한 나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최고의 선택이란 실제로 존재하는가?'이다.
인간의 선택을 4사분면으로 구분한다면, 나는 최고 / 최선 / 차악 / 최악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4가지 선택 앞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고를 추구하지만, 사실 최고라는 선택지는 허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기회비용'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만큼
하나의 선택은 다른 하나의 포기를 의미하며,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늘 후회를 남기기 때문이다.
주인공 로렌스 역시 이를 모를 리가 엇지만, 전 세계 가톨릭 교도들을 이끄는 수장을 뽑는다는 어마어마한 대의명분 앞에서
어쩌면 최고의 선택이 아니면 안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그 모든 것을 잊었을 지도 모르겠다.
콘클라베에서 유력하게 떠오르는 인물은 총 3명이다.
제3세계를 대표하는 조슈아 아데예미 추기경
구세계를 대표하는 보수주의자, 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
미국으로 대표되는 중도주의자, 조지프 트랑블레 추기경
그러나 하나 둘씩 로렌스에게 들려오는 소식에
외부 조건들로부터 추기경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최고의 선택을 위해 부적합한 후보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신념이 충돌한다.
주어진 두 개의 선택지에서 로렌스는 신념을 선택하며
3명의 추기경에게 얽힌 사건들을 폭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한 명씩 후보에서 소거되며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새로 떠오른다.
(아데예미는 성(姓)추문으로, 트랑블레는 추기경직을 매관매직한 이유로, 테데스코는 극단적 보수주의로 교황직에서 멀어진다)
새롭게 후보로 떠오르는 인물은 2명, 추기경 단장인 로렌스와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
콘클라베 이전까지 아무도 존재를 알지 못했던 베니테스 추기경은 의중 결정 추기경*이었으나, 진보적인 의견을 서슴없이 펼쳐보이며 아데예미 추기경의 위치를 순식간에 대체하고 있었다.
(* 의중 결정 추기경: 교황이 공개적으로 임명하지 않고 비밀리에 지명한 추기경)
반면 주력 후보들에게 감춰진 진실을 밝히며 표심을 얻었던 로렌스는 잠시나마 교황이 되는 꿈을 가져보지만
곧 터무니없는 욕심이었음을 자각하고, 다시 한 번 교황이 될 자격이 있는 자가 선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로렌스마저 사의 아닌 사의를 표하게 되며, 영광의 자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베니타스 추기경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군중의 심리 속에서 잠시 미뤄두었던 로렌스의 신념이 빼꼼 머리를 든다.
그것은 베니타스 추기경에 얽힌 진실로, 의료 차 예약했다는 제네바행 티겟이 사실은 여성의 기관을 들어내기 위한 목적이었음이 밝혀진다. (베니타스 추기경은 남성과 여성의 기관이 공존하는 소수자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최고의 선택을 추구하고자 했던 로렌스의 신념이 생각치도 못했던 결과에 도달하며, 과연 콘클라베 기간 자신의 노력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에 대해 되돌아보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이러한 서사 속에서 최고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어쩌면 인간의 이성에 대한 오만한 기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최고의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이게는 후회 즉 기회비용을 최소화해나가는 최선의 선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이 굳건하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사실 가톨릭 교구의 신성함에 맞서는 내용이기도 하여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면 불쾌감을 느낄 수 있을 수 있어 비추천하고 싶다.
다만 정적인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세력간의 암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과 함께 영화를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제작했던 영화사에서 개봉한 작품인 만큼, 영상미와 사운드가 매우 뛰어나다)
'컨텐츠 한바닥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 (2025) (0) | 2025.07.16 |
---|---|
[서평] 파과, 구병모 (2018) (2) | 2025.07.12 |
[서평] 급류, 정대건 (2022) (1) | 2025.07.10 |
[영화평]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 (2025) (2) | 2025.07.08 |
[영화평] 검은 수녀들 (2025) (0) | 2025.03.11 |
댓글